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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닝 수기 공모전의 수상작을 모았습니다.

  • 2009
일반부
|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장려상
고등부
|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장려상

일반부 대상

이러닝! 또 하나의 이름 찾기

일반부 대상 김은화

딩동댕 종소리와 함께 발걸음도 가볍게 나는 교실로 향한다. 교실 문에 가까이 가자 우당탕탕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학생들을 보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저들 또래였을 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푸근해지는 게다. 그리고 오늘도 보람 있는 하루가 되기를 스스로 다짐하며 힘차게 교실 문을 여는 것이다.

벌써 8년이 되었다. 내가 교직에 들어온 지가 어느덧 그리 흘렀다. 참으로 시간은 빠르기도 하지.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새 교직 초년생 꼬리표를 떼고 1급 정교사가 된 지도 꽤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교직을 향한 꿈을 품고 밤이 맞도록 공부하던 그 당시의 일들이다. 가끔 교육 실습을 나오는 사범대 학생들의 임용고시에 대한 물음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곤 한다.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시험 출제자의 위치에서 문제를 대하라고. 그리고 또 한 가지, 인터넷을 잘 활용하라고 자문한다. 요즘 말로 하면 이러닝을 잘 이용하라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에 스스로도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나는 마음 속에 바람이 부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일종의 자아 존재감 확인이랄까 그런 거였을 것이다. 가정생활에 충실하며 엄마로 아내로서의 위치를 잘 지켜왔지만 내 이름 석 자로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적당한 이름이 내겐 필요하였다. 아무개 엄마나 누구누구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로 세상을 살고 싶은 욕구가 자꾸자꾸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공부였다.

한 동안의 고민 끝에 편입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사범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쟁쟁한 경쟁을 뚫고 합격을 하였다는 기쁨에 나는 공부가 어려운 줄도 모르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아이 키우며 살림하며 더군다나 시모님까지 계신데 어떻게 공부를 하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를 생각하며 나는 시간을 쪼개 하루 24시간을 매분 매초 아끼며 살았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마음만이 아니라 결실을 얻어 보란듯이 엄마와 아내 이외의 이름으로 나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그 결과 무사히 졸업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들도 임용고시에 합격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데 감히 주부인 내가 그것도 그들보다 열 살이나 나이가 많은 내가 임용고시에 도전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시험 공부하랴 독감 걸린 아들 녀석 돌보랴 정작 나 자신은 챙기지도 못하면서 했던 공부였다. 치매 걸리신 시어머님 때문에 공강 시간엔 그 흔한 차 한 잔 동료들과 맘 편히 마시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향했고, 그 다음 강의 시간에 맞추어 학교로 향하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신났던 공부였는데 임용고시가 힘들다고 해서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도전은 정해진 과제였으며 이왕 하는 것이니 만큼 전략적으로 매달리고 싶었다. 반드시 성공이라는 결실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동료들의 대부분은 전략적인 학습을 위해 서울의 학원가로 향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에겐 정해진 코스 같은 곳이었다. 누구나 그곳에 다녀왔으며 그곳에서 시험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얻곤 하였다. 그러나 내겐 불가능하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때문이었으며 치매가 심해져서 혼자 힘으로는 화장실 출입조차 어려운 시어머님 때문이기도 했다. 도저히 한 나절도 집을 비울 수 없는 상황에서 내 공부하겠다고 일주일에 3~4일을 그것도 서울까지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바로 이러닝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이러닝’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그 때만 해도 ‘이러닝’ 초창기였으므로 그저 ‘인터넷 강의’ 정도로만 알려졌을 때였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러닝 초창기 멤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고민 끝에 알게 된 인터넷 사이트를 스승 삼아 나는 시험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다양한 검색을 통해 내가 공부할 내용과 목적에 부합되는 사이트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교재를 준비했으며 강의 계획표를 뽑아 책상 위에 붙여 두고 내 시간과 강의 시간을 잘 일치시켜 학습 계획표를 짜기 시작했다.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될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학원의 시간표에 개인 시간을 맞추어야 하므로 나 같은 주부의 경우에는 공부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시간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었으므로 여유 있게 시간 분배를 할 수가 있었다. 때때로 강의를 듣다가도 바쁜 일이 생기면 잠시 보류했다가 다시 들을 수도 있었고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재수강도 할 수 있었으므로 스스로의 수준에 맞는 수업이 가능하였다. 계획표를 짠 후엔 웬만하면 계획대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였다. 혹시라도 시간에 차질이 생길 경우엔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날의 학습량은 그날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교육학을 수강할 땐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교육학은 공부한 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러닝이 주는 재수강 덕분에 나는 전혀 모르던 교육학 신 이론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전공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들어서 이해가 어려울 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또 한 번 들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반복학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재수강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는 반복 학습이 주는 계산상의 효과 그 이상을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시너지 효과가 아니던가. 이해는 물론 그로 인한 자신감까지 배가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남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서울까지 가며 어렵게 공부하면서도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해 힘들어 할 때, 나는 이러닝을 통한 나만의 학습전략으로 내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동료들보다 좀 더 일찍 시험에 관한 학습의 구체적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닝을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이로 인해 나는 엄마의 역할은 물론 아내이자 며느리의 자리까지 제대로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이름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그리고 임용고시에 보란 듯이 합격했고 교직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근 십 년이나 늦은 출발이었으나 그래서 더욱 뜻있고 행복한 시작이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할 때 가정살림 때문에, 돌봐야 할 식구들과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들 때문에 막상 시작하지 못했던 친구들은 지금도 엄마로 아내로 살고 있다. 물론 그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때로는 나만의 이름으로 세상을 살고 싶은 욕구가 자꾸 강해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가정이 안정되고 생활이 여유로울수록 더욱 자아 정체성에 관한 끊임없는 욕구가 우리 주부들을 뒤흔든다. 내가 그랬고 내 친구들이 그렇다. 그러나 상황을 탓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미처 가지 못한 우리들의 길에 미련을 갖고 살게 될 뿐이다. 마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나고 나서야 담대하게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의 미래가 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는 어떻게 그것을 준비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만약 내게 이러닝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기대할 수 없었을 터였다. 가정주부이자 아내이자 며느리로서 1인 3역을 해야 하는 내가 어떻게 규칙적으로 집을 비우며 공부할 수 있겠는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떤 주부라 하더라도 자신의 일을 위해 가정을 희생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닝이 있었기에 공부할 수 있었고, 가정생활은 물론 남편에게도 인정받으며 내 이름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이러닝은 정말 고맙고 대견한 것이다.

근래 나는 학생들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다. 요즘은 교육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러닝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터라,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다양한 학습 도구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학습 도구들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내게 생긴 또 하나의 욕심은 내가 만든 도구로 내게 속한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학습 도구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성향 및 학습 동기와 학습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다지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동안 다양한 이러닝 학습 도구로 자기 주도적 학습을 유도해 보기는 했으나 내가 만든 도구로 우리 학생들의 상황에 맞게 가르치고 싶은 욕구가 자꾸 생기는 것이다. 이러닝의 효과는 내가 이미 경험한 바로 알고 있으므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먼저 간단한 ‘문제은행’을 만들어 학습 진도에 맞는 다양한 문제를 제시하고 스스로의 수준에 맞는 피드백을 제공해 보고자 하였으나 이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여서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주어진 학습에 적합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도구를 제작하고 싶다. 교과서에 나오는 학습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보다 넓고 깊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학생들에게 깊은 지적인 자극을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구를 제작하는 것이 내 짧은 지식으로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님이 문제이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반복하여 배우며 하다 보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교육비 때문에 학부모들 등이 굽는다고 모두들 아우성이다. 그러나 모두가 우려를 표하고 걱정만 한다고 해서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교육을 강제로 막을 수도 없는 현실이다. 무언가 새롭고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이러닝에서 찾는다. 아직 그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들이 많지만 꾸준히 차근차근 여론을 형성시키며 효과적인 학습도구를 제작하게만 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자신의 수준과 상황에 맞는 학습 도구만 개발된다면 그리고 그에 합당한 여론만 형성된다면 가능한 일임을 믿는다. 내가 그랬듯이 구태여 학원에 가지 않아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환경이 가능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숙제가 많으면 많은 대로 선생님께 조금 꾸중을 들어도 곧 헤헤 웃으며 행복해 하는 그들을 보면 세상이 온통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의 깨끗하고 맑은 웃음처럼, 세상을 향한 구김 없는 희망처럼 그들의 장래가 그렇게 밝고 환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이름으로 세상을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준비의 여정에 내가 있음을 감사한다. 부족하지만 나를 통해, 내 삶의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열심히 이러닝 도구 제작을 위해 책자를 펼친다. 오늘의 내 이름을 만든 이러닝을 생각하며 우리 학생들에게는 어떤 희망의 이름을 가져다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